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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정신분석

우울증과 자살

 

Depression은 원래 지각용어로 사용되던 말

 우울증을 뜻하는 depression은 원래 지각 용어였습니다.. 푹 꺼져있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게다가 우울증은 의미 차원으로 너무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분에 한정되어서 사용이 되죠.

그런데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우울증에서 자살성향 문제입니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해서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병리학적 관점에서는 어떤 질환을 사전에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죠.

 

 그런데 정말 우울증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정신분석에서는 우울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침울 과 멜랑꼴리죠.

침울이라고 할 때는 신체적으로 과로하거나 지쳐서 기분이 우울해져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 쉬면 회복이 되죠. 이것은 신체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멜랑꼴리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멜랑꼴리란 정신분석에서는 유일하게 현실논리를 그대로 차용하는 정신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겉으로 유쾌하게 보이는 부분도 꽤 많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우울증의 모습과는 딴판일 때도 있죠.

 

 침울에서는 자살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멜랑꼴리의 경우에는 자살성향이 조금 도드라지게 등장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자기 때문에 되지 않는다고도 주장하죠. 무슨 일만 생기면 스스로 자학합니다. 정신의학에서 생각하는 조울증과도 조금 유사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침울과 멜랑꼴리는 완전히 다른데, 대부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 분석경험에서 병원에서 조울증 진단을 받고 오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약물만 복용하다가 저를 찾아오셨던 케이스인데, 일상생활에 그렇게 문제는 없었던 분입니다. 진단은 조울증이긴했는데 자학과 같은 내용들이 없었습니다. 물론 저와는 진단이 다르게 나왔습니다.

 정신의학에서 요즘 멜랑꼴리형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만들어서 자살성향과 연결되는 내용이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 같습니다. 현상에만 치우치지 않고 좀 더 섬세한 탐구를 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프랑스 반정신의학운동기관에서는 멜랑꼴리 환자들이 괴롭고 죽고 싶다고 할 때는 그렇게 신경을 쓰진 않는다고 합니다. ‘힘들어. 괴로워. 죽고싶어라고 할 때는 직원들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여가시간을 보내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갑자기 웃으면서 기분 좋아하고 할 때부터는 긴장상태로 근무를 하게 됩니다. 이때 상승된 기분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이미지가 추락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높은데서 갑자기 떨어지는 경우가 있죠. 교통사고도 몸이 붕 떴다가 땅으로 내려오는 이미지를 지니기도 하고요.

 

우울이 필요할 때도 있다.

 프로이트는 멜랑꼴리에서 등장하는 자살성향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사디즘에서 찾습니다. 그런데 사디즘이라고 하면 타인을 가학 하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것 같습니다. 이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가학입니다.

물론 여기서 조금 혼동이 있을 겁니다. 자기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피학이라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는 어느 신경증 환자든 다른 사람을 살해하고자 하는 충동을 스스로에게 돌려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품는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의 살해하려는 충동은 사디즘에서 출발합니다. , 결과로 등장한 것은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지만 그 원천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가학과 피학은 서로 능동과 수동으로 각각의 대립쌍으로 작동하는 충동이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내용들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 입장에서 이렇게 설명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으로도 여겨집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예시도 듭니다.

 

치열하게 사랑에 빠지는 상황과 자살을 하는 상황이라는 두 상반된 극단적 상황 속에서 방식은 분명히 다르지만 자아는 대상에 의해 압도당하고 있는 셈이다.”

 

 누구든지 열애에 빠지면 자신의 자아가 쪼그라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죠. 신경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열애에 빠지게 되면 스스로의 이기주의를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기도 합니다.

자살하는 상황은 어떨까요? 이때 자아는 사라진 대상을 따라 같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정신구조에 대입해본다면 의식에서 대상은 인지되지 않는데 무의식에서는 사라진 대상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신경증의 특성대로 변장해서 귀환합니다. 그래서 실체적인 진실이 무엇인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죠.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병든 자의 시선은 오히려 현실을 더 예리하게 파악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 역시도 이런 점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탐구했었습니다. 왜 병에 들어야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냉철해지는 것인지를요.

 

정신의학에서조차 그 정의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우울증은 임상에서도 여러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한데 묶어 하나로 종합한다는 일이 무망 한 일인 듯 보이기도 한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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